레다와 백조

레다와 백조

오늘만큼은 제우스도 운이 좋았다

처음 이 그림을 보면, 왠지 방 안이 조금 시끄럽게 느껴집니다.

붉은 휘장은 무겁게 드리워져 있고, 침대 위의 여인은 나른하게 몸을 기대고 있죠.

그런데 그 곁의 백조는 지나치게 흥분해 있습니다.

그리고 레다는, 마치 그 백조를 달래는 듯 손을 뻗고 있죠.

이쯤 되면 눈치채셨을 겁니다.

네. 저 백조는 그냥 백조가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바람둥이, 제우스입니다.

제우스는 인간 여인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변신을 즐겼습니다.

어떤 날은 황금비가 되었고, 어떤 날은 황소가 되었고, 그리고 오늘은 백조가 되었죠.

개인적으로 이 그림의 제목을 다시 붙인다면, 아마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제우스의 운수 좋은 날.’

이 그림의 재미는, 단순히 신화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Point 01
이 그림의 재미는, 단순히 신화의 장면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뒤쪽을 보세요.

시녀 한 명이 오리가 담긴 케이지를 끌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케이지 속 오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레다를 바라보는 제우스와도 닮아 있습니다.

발치에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앞발을 들고 짖는 있는데 환영이라기보다 수상한 침입자를 발견한 것 같아 보입니다.

욕망은 늘 조용히 숨어 있다가, 결국 시선을 들키고 마는 법이니까요.

시녀 뒤편에 새장 안에 앵무새를 보세요.
Point 02
시녀 뒤편에 새장 안에 앵무새를 보세요.

르네상스 회화에서 앵무새는 종종 순결을 상징했는데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새장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마치 순결이라는 가치가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틴토레토의 그림은 재미있습니다.

신화를 단순히 ‘이야기’로 설명하지 않고, 방 안의 사물과 동물들까지 이용해서 분위기를 만들어내거든요. 덕분에 우리는 그림을 읽는 동시에,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신화 속에서, 제우스와 레다는 이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두 딸을 낳죠. 쌍둥이 아들들은 훗날 밤하늘의 별자리인 디오스쿠오리가 되고, 딸 중 한 명은 바로 그 유명한 헬레나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말이죠.

그러고 보면 이 그림 속 작은 방 안에서 시작된 사건 하나가, 결국 그리스 세계 전체를 흔들어 놓게 되는 셈입니다.

틴토레토는 왜 이렇게 극적으로 그렸을까

틴토레토는 티치아노, 베로네제와 함께 베네치아를 대표하던 화가였습니다.

다만 시기로 보면 가장 늦게 활동한 화가였죠.

르네상스의 균형과 안정이 지나간 뒤, 좀 더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이 유행하던 ‘매너리즘’ 시대의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늘 움직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레다는 사선으로 길게 누워 있고, 시녀는 역동적으로 몸을 틀고 있으며, 그 사이를 붉은 휘장이 V자 형태로 가로지릅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화면 안을 흐르게 되는 거죠.

당시 많은 매너리즘 화가들이 이런 사선 구도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단순히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전달되도록 이런 구도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틴토레토의 그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읽힙니다.

가장 인간적인 베네치아 화가

개인적으로 틴토레토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감상자가 그림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굉장히 친절하게 장면을 구성하는 화가였거든요.

어쩌면 그건 그의 삶과도 관련이 있었을 겁니다.

티치아노베로네제가 교황, 황제, 귀족들의 화가였다면, 틴토레토는 조금 더 서민적인 화가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이미 거대한 명성을 가진 두 화가의 그늘 아래에서 오래 경쟁해야 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정말 쉴 틈 없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심지어 주문자가 원하면, ‘티치아노 스타일로도 그려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자존심보다 생계가 더 중요했던 겁니다.

대신 그는 누구보다 빨리 그렸고, 누구보다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평민 계층의 지식인, 베네치아의 조합 공간인 스콜라, 성당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기게 되죠.

그래서 베네치아를 여행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틴토레토를 만나게 됩니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었던 화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 역시, 신화 속 신의 이야기를 빌려, 결국 인간의 욕망과 소동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하루 한 작품,

카카오톡으로 매일 만나보세요.

카카오톡 친구추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