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rcus

서커스

분명 떠들썩한 서커스 공연장입니다.

곡예사는 공중을 돌고,
광대는 몸을 흔들고,
관객들은 빼곡하게 객석을 채우고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림 전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마치 모두가 웃고 있는데,
누군가는 아주 차갑게 그 장면을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죠.

그 사람이 바로 조르주 쇠라였습니다.

객석만 봐도 당시 사회가 보입니다

이제 관객석을 자세히 보세요.

객석은 위아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가장 아래에는 잘 차려입은 상류층 사람들이 앉아 있고,
그 위에는 조금 더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죠.

그리고 맨 꼭대기.

의자조차 없이 난간에 기대 서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노동자 계급이었죠.

쇠라는 이런 사회 구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디에 앉는지까지,
당시의 계급 질서를 그대로 그림 안에 담아냈던 겁니다.

화려한 서커스 뒤에,
도시 사회의 구조가 함께 들어 있었던 셈이죠.

가까이 가면 그림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그림,
가까이 가서 보면 조금 놀랍습니다.

붓으로 자연스럽게 칠한 그림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수없이 많은 작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이것이 바로 쇠라가 만든 ‘점묘법’입니다.

서로 다른 색을 섞지 않고,
아주 작은 점으로 나란히 찍어두는 방식이죠.

멀리서 보면 우리의 눈이 그 색들을 스스로 섞어서 인식하게 됩니다.

쇠라는 이것을 감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연구했습니다.

빛은 섞을수록 밝아지지만,
물감은 섞을수록 탁해진다는 사실까지 분석하면서요.

그래서 그는 색을 섞는 대신,
점을 교차시키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손으로 만든 픽셀

생각해 보면 참 놀랍습니다.

우리가 보는 디지털 사진도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
결국 작은 화소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쇠라의 점묘법도 비슷합니다.

수많은 작은 색점들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것이죠.

그러니까 쇠라는 19세기에 이미,
손으로 픽셀을 찍어내고 있었던 셈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그림이었겠지만,
지금 보면 오히려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집니다.

너무 일찍 끝나버린 화가

안타깝게도 쇠라는 이 <서커스>를 끝으로,
32살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작품이 공개된 지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죠.

그래서 이 그림은 단순한 서커스 장면이 아니라,
쇠라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실험의 결과처럼 느껴집니다.

빛을 분석하고,
색을 연구하고,
그 모든 걸 끝없는 점으로 화면 위에 쌓아 올렸던 사람.

어쩌면 쇠라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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