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 이헤이헤
여인들은 마치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손끝은 부드럽게 모여 있고, 무릎은 리듬을 타듯 굽혀져 있죠.
그리고 화면 전체에는 뜨거운 공기 같은 색이 흐릅니다.
폴 고갱의 파 이헤이헤 입니다.
낯선 세계를 꿈꾸기 시작한 화가
고갱이 처음부터 타히티를 사랑했던 건 아닙니다.
사실 그는 먼저 ‘환상’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어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그곳에서 고갱은 아시아와 남태평양의 조각, 직물, 공예품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강하게 매료되죠.
산업화된 도시의 삶 대신,
꾸미지 않은 삶.
원초적인 색.
본능에 가까운 감정.
고갱은 그런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1891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나게 되죠.
몸짓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문화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인물들의 자세가 조금 독특합니다.
손을 모은 채 다리를 굽히고 있는데요.
어딘가 춤처럼 보이기도 하고, 의식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이 포즈는 실제로 자바 섬 사원의 부조 장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고갱이 참고했던 자료들이 그의 사후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이 그림은 단순한 타히티의 풍경이 아니라,
고갱의 머릿속에서 여러 문화가 섞여 탄생한 상상의 무대에 가깝습니다.
평평한 그림인데, 왜 이렇게 강렬할까
또 하나 꼭 봐야 할 건 선입니다.
윤곽선은 굵고 단순하죠.
입체감도 크지 않습니다.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인 것처럼 평평해 보여요.
그런데 이상하게 강렬합니다.
고갱은 사실적인 재현보다 ‘느낌’을 선택한 화가였거든요.
그래서 그의 그림은 현실이라기보다 기억이나 꿈처럼 다가옵니다.
특히 붉은색과 노란색, 짙은 초록이 충돌하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타히티의 공기보다 오히려 고갱 자신의 욕망과 열망이 더 강하게 느껴지죠.
“고갱은 풍경을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이 갈망한 세계를 색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제목
그리고 제목도 묘합니다.
‘파 이헤이헤’.
보통은 ‘아름다움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타히티에는 없는 말이라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고갱이 타히티어를 잘못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아름답게 꾸미다’라는 뜻의 단어나,
‘축제를 준비하다’라는 표현을 헷갈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고갱답게 느껴집니다.
그는 끝까지 타히티를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기에 더 강하게 매혹되었고,
그 낯선 아름다움을 자기만의 색으로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고갱이 찾고 싶었던 것
어쩌면 이 그림은 실제 타히티의 모습이라기보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순수한 세계”를 향한 고갱의 그리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은 가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시작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