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고갱의 얼굴은 왜 이렇게 거칠어 보일까
그의 얼굴은 어딘가 날이 서 있습니다.
짙게 내려온 눈썹, 굳게 다문 입,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차가운 눈빛.
마치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의 뒤에는 예수가 서 있습니다.
노란 몸을 한 그리스도. 그리고 그 옆에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도자기 항아리가 놓여 있죠.
한 화면 안에, 신과 불안, 구원과 공포가 동시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이 그림은 폴 고갱의 자화상입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바라본 세계
고갱은 반 고흐, 세잔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묶입니다.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순간적인 빛과 공기의 변화를 포착하려 했다면,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물의 본질, 인간의 감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내면 말이죠.
그래서 고갱의 그림은 단순히 ‘보이는 모습’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서 흔들리는 감정까지, 함께 드러내려고 하죠.
노란 예수는 사실 고갱 자신이었다
그림 뒤쪽 왼편에 보이는 작품을 자세히 보세요.
노란색 피부를 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바로 고갱의 대표작, <황색 그리스도>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를 노란색으로 그린다는 건 꽤 낯선 일이었습니다.
고갱은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싶어 했죠.
그리고 더 흥미로운 건, 예수의 얼굴이 사실 고갱 자신의 얼굴을 바탕으로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마치 스스로를 순교자처럼 투영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자화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팔은 고갱의 머리 위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마치 신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암시처럼 보이죠.
하지만 동시에, 그 장면은 어딘가 위태롭기도 합니다.
구원을 바라는 사람의 얼굴에는, 대개 불안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도자기 항아리의 얼굴이 되었다
이번에는 오른쪽을 보세요.
이상하게 일그러진 얼굴 형태의 항아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고갱이 직접 만든 도자기 작품인데, 이름도 강렬합니다.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자화상 항아리.’
말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괴기스럽게 비틀어 만든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지금 자화상 속 고갱의 얼굴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거칠고, 예민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죠.
이 두 작품은 지금 실제로 따로 존재합니다.
<황색 그리스도>는 현재 뉴욕의 버펄로 AKG 아트 뮤지엄에, 그리고 자화상 항아리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죠.
흥미로운 건, <황색 그리스도> 속 인물 방향이 지금 그림과 반대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고갱이 거울에 비친 상태를 기준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고갱이 거울 속에서 바라본 자기 세계를 함께 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왜 타히티로 떠나려 했을까
당시 고갱은 도시의 삶에 깊게 지쳐 있었습니다.
문명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보다, 점점 더 메마르게 만든다고 느꼈죠.
그래서 그는 믿기 시작합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에는 순수한 에너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직전, 1891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화상은 단순한 얼굴 그림이 아닙니다.
인생 전체를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직전의 초상인 거죠.
그래서 화면 안에는 서로 다른 감정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한쪽에는 자신을 지켜줄 것 같은 그리스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불안과 공포를 품은 괴기스러운 얼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고갱 자신이 서 있죠.
희망과 불안 사이.
어쩌면 이 그림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한 사람의 마지막 표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