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ia

올랭피아

모두가 불편해했던 시선

한 여자가 침대 위에 누워 있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습니다. 시선도, 몸도, 표정도요.

오히려 우리를 빤히 바라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죠?”

같은 누드화, 완전히 다른 반응

1865년 파리 살롱전. 마네의 《올랭피아》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역시 누드화였다는 점입니다.

둘 다 여성의 알몸을 그렸지만, 한 작품은 환호를 받았고, 다른 한 작품은 조롱과 야유를 받아야 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달랐을까요?

카바넬-비너스의 탄생
카바넬《비너스의 탄생》

그녀는 왜 비너스가 아니었을까

차이는 의외로 작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올랭피아의 목을 보세요. 검은 리본이 묶여 있습니다. 손목에는 팔찌가 걸려 있고, 발에는 슬리퍼가 걸쳐져 있죠.

당시 파리 사람들은 이 장식들을 보자마자 알아챘습니다.

‘아, 이 여자는 여신이 아니구나.’

그녀는 신화 속 비너스가 아니라, 현실의 파리 여성이었습니다.

더 직접적인 힌트도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

‘올랭피아’는 당시 파리의 매춘부들이 자주 사용하던 이름이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가 큰 인기를 끌면서, 그 이름은 일종의 상징처럼 퍼져 있었죠.

즉 마네는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 이 도시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지를요.

마네는 무엇을 바꿨을까

사실 구도 자체는 새롭지 않았습니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참고했습니다. 누워 있는 여성, 곁의 하녀, 그리고 시선을 붙드는 동물까지.

다만 티치아노의 그림에는 작은 강아지가 있었고, 마네는 대신 검은 고양이를 등장시켰습니다.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죠.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부드럽고 이상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올랭피아는 차갑고 현실적입니다. 그녀는 관람객을 유혹하기보다, 오히려 응시합니다.

그 시선이 당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티치아노 우르노의 비너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사람들은 왜 화를 냈을까

왜냐하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고상함을 말하던 부르주아 남성들이, 뒤에서는 이런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올랭피아 곁의 흑인 하녀도 그냥 배경이 아닙니다. 꽃다발은 누군가의 선물이고, 그녀의 장신구들은 누군가의 후원이 있었다는 걸 암시합니다.

이 그림은 누드화가 아니라, 당시 파리 사회의 위선을 정면으로 드러낸 초상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를 냈습니다.

누드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현대미술은 여기서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마네는 이미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한 차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신화 속 여신이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알몸으로 등장시켰죠.

그리고 《올랭피아》에서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예술은 현실을 숨겨야 하는가?’

마네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현대미술은 어쩌면 이 도발적인 침대 위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그녀의 시선이,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네 풀밭위의 점심식사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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