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드와 항아리
숲속에 서 있는 여인, 그런데 얼굴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그림 앞에 서면 크기부터 압도됩니다.
높이 170cm.
폭은 131cm.
거의 실제 사람 크기에 가까운 작품이죠.
그리고 놀랍게도 앙드레 드랭은 이 거대한 캔버스를 직접 야외로 들고 나가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당시는 물감 튜브와 기차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화가들이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작업하는 것이 가능해졌죠.
고전적인 누드화, 그런데 어딘가 이상합니다
이 그림은 풍경 속 누드라는 굉장히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통적인 아름다움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특히 오른쪽 하늘을 보세요.
원래는 산이 더 크게 그려져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요.
드랭은 그 부분을 다시 덮어 구름으로 바꿨습니다.
그림을 계속 수정하며 화면의 균형을 고민했던 흔적이죠.
사람 얼굴이 아니라, 가면처럼 보이는 이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모델의 얼굴입니다.
자세히 보면 표정이 거의 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면을 쓴 것처럼 딱딱하고 단순하게 느껴지죠.
실제로 드랭은 당시 인물 얼굴을 가면처럼 표현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후 그가 만든 청동 조각들과 이 얼굴이 굉장히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코와 입의 단순한 형태는 거의 같은 조형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단순한 누드화가 아니라,
드랭이 회화와 조각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얼굴을 만들기 시작한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죠.
어쩌면 그는 사람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사람 안에 숨겨진 원초적인 형태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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